파촌 나바로 | 멸종된 줄 알았던 두 갈래 코 사냥개와 1979년 세 명의 수의학도
작성자: 다온 | 최종 수정일: 2026년 8월 15일 | 본 글은 스페인 정부·왕립견종협회 공개 자료와 품종 복원 참여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 파촌 나바로. 콧등 가운데가 깊게 갈라진 스플릿 노즈가 이 견종의 상징이지만, 정작 모든 파촌 나바로가 이런 코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Photo by 99bea, via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1890년대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도그쇼가 열렸을 때, 전람회장에 선 개들 중에 코가 둘로 갈라진 포인터가 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북서부에는 같은 유형의 개가 파촌, 파촌 데 비토리아, 파촌 에스파뇰, 페르디게로 코문, 페르디게로 나바로 같은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전람회는 이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파촌 나바로(Pachón Navarro)였습니다.
그로부터 80여 년 뒤, 이 개는 사라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 나선 것은 왕실도 귀족도 아닌, 스물 몇 살의 수의학도 세 명이었습니다.
🚨 [먼저 짚고 갈 사실 3가지]
- 갈라진 코는 후각에 이점이 없습니다. 파촌 나바로 브리더들 사이에서는 스플릿 노즈가 일반적인 코에 비해 아무런 이점이 없는, 순전히 외형적 특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개열 위험 때문에 이 형질을 일부러 고르지 않는 브리더도 있습니다.
- 모든 파촌 나바로가 갈라진 코는 아닙니다. 스플릿 노즈는 일부 개체에서만 나타납니다. 다만 파촌 나바로의 품종 표준은 이 형질을 결격 사유로 두지 않는 사실상 유일한 표준입니다. 대부분의 견종 표준은 갈라진 코를 중대 결점이나 실격으로 규정합니다.
- 지금도 취약 품종입니다. 2009년 전체 개체 수가 700~1,000마리로 추정되었고, 스페인 왕립견종협회(RSCE)가 2026년 5월~2027년 4월 기준으로 지정한 취약 스페인 견종 21종 목록에 파촌 나바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중세의 그림에서 1911년 공인까지
파촌 나바로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에서 유래한 포인터 계열 조렵견으로, 바스크 지역의 다섯 개 토착 견종 가운데 하나로 분류됩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포인터 계열 중 하나로 여겨지며,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도상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15세기 중반부터는 스페인 미술에 포인팅 도그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톨레도 대성당의 매사냥 세밀화, 그리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아스투리아스 공 발타사르 카를로스의 사냥 초상화에 등장하는 개가 현대의 파촌 나바로와 매우 닮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그림 속 개의 외형을 근거로 한 해석이며, 혈통상의 직접 연결이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들어 사냥이 부르주아 계층의 취미로 확산되면서 이 유형의 개는 스페인 전역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1911년, 왕립견종협회(Real Sociedad Canina)가 창설되면서 파촌 나바로는 창립 당시 공인된 견종 목록에 이름을 올립니다.
▲ 1890년 전시회에서 촬영된 나파르 에페르 차쿠라(파촌 나바로의 바스크어 명칭). 이 견종이 19세기 말 이미 공식 전시 무대에 올라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Anonymous (189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2. 토끼가 사라지자 개도 사라졌다
파촌 나바로를 몰락시킨 것은 전쟁이 아니라 바이러스였습니다. 1950년대 스페인 전역에 토끼 점액종증(myxomatosis)이 퍼지면서 이 개의 주된 사냥감이던 야생 토끼가 사실상 자취를 감춥니다. 사냥꾼들은 파촌 나바로를 버리고 조류 사냥에 특화된 포인터와 세터로 갈아탔습니다.
수요가 끊기자 번식도 멈췄습니다. 1970년대 초에 이르면 개체 수가 너무 줄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견종이 멸종했다고 믿게 됩니다. 다만 어느 기관이 공식적으로 멸종을 선언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표현이 자료들의 일치된 서술입니다.
3. 1979년, 세 명의 수의학도가 받은 과제
1978년, 스페인 토착 견종들이 처한 상황을 우려한 마드리드 중앙견종협회는 스페인 견종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호세 마누엘 산스 티몬을 총괄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이듬해인 1979년, 위원회는 세 명의 젊은 수의학도에게 임무를 맡깁니다. 루이스 M. 아리바스, 루이스 A. 센테네라, 그리고 카를로스 콘테라. 나바라, 리오하, 알라바 지역과 포르투갈 일부를 돌며 남아 있는 파촌 나바로를 찾아 목록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애초에는 짧은 조사 보고서 한 편으로 끝날 계획이었습니다. 결과는 달랐습니다. 훗날 카를로스 콘테라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어린 학생에게는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일은 정말 많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말 품종을 두고 비슷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사냥개를 찾아 나서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죠. (…) 우리는 외부의 도움 없이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비판받았고 나머지에게는 무시당했지만, 아버지와 삼촌들, 사촌들이 모두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오래 걸렸어요. 이제 우리 머리는 하얗게 셌죠. 하지만 해냈습니다. 요즘 젊은 사냥꾼들은 이 견종이 한때 멸종 직전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 카를로스 콘테라, Craig Koshyk와의 인터뷰(2011) 중. 영문 원문을 옮긴 것입니다.
이 조사는 스페인 사냥꾼들 사이에서 토착 조렵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린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2001년 알라바주 라세르나에 품종 보존 협회가, 2002년 팜플로나에 사육자 모임이 만들어졌고, 2006년 나바라 지방정부가 품종 표준을 공표했으며, 2010년에는 스페인 정부 공인 견종 목록에 등재됩니다.
4. 기록으로 남은 연표
| 시점 | 내용 | 출처 |
|---|---|---|
| 1890년대 | 스페인 초기 도그쇼에 출품, 여러 지역 명칭이 '파촌 나바로'로 통합 | Guía de campo de las razas autóctonas españolas(2009) |
| 1911년 | 왕립견종협회 창설과 함께 공인 견종에 포함 | 동상 |
| 1950년대 | 토끼 점액종증 확산 → 주 사냥감 소멸, 사냥꾼들이 견종을 포기 | Koshyk, Pointing Dog Blog(2011) |
| 1970년대 초 | 개체 수 급감, 멸종한 것으로 널리 인식됨 | 동상 / Guía de campo(2009) |
| 1979년 | 수의학도 3인(아리바스·센테네라·콘테라)의 생존 개체 조사 시작 | Koshyk(2011) / Guía de campo(2009) |
| 1983년 | 스페인 견종 우표 4종 중 하나로 발행 | 스페인 관보(BOE) 1983.5.18 |
| 2006년 | 나바라 지방정부, 품종 표준 공표 | Orden Foral 270/2006 |
| 2010년 | 스페인 정부 공인 견종 목록 등재 (단, FCI 미공인) | Orden ARM/573/2010 |
| 2026~2027년 | RSCE 취약 스페인 견종 21종 목록에 포함 (부르고스 포인터도 동일 목록에 등재) | RSCE, Razas Españolas Consideradas Vulnerables |
5. 갈라진 코는 능력이 아닙니다
가장 반직관적인 사실 — "코가 두 개니까 냄새를 두 배로 맡는다"는 설명은 브리더들 사이에서 부정되고 있습니다. 스플릿 노즈는 후각에 아무런 이점을 주지 않는 외형적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실제로 모든 브리더가 이 형질을 선택 교배하지도 않습니다. 갈라진 코를 가진 개를 계속 교배에 쓰면 완전한 구개열을 가진 강아지가 태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부학적으로 스플릿 노즈는 코 구조 자체가 갈라진 상태입니다. 정도는 다양해서, 콧구멍 사이 고랑이 보통보다 조금 깊은 수준부터 완전히 갈라진 형태까지 나타납니다. 파촌 나바로 사육 현장에서는 태어난 강아지의 최대 10% 정도가 갈라짐이 너무 심해 호흡이나 젖 빨기가 어려운 상태로 사산되거나 출생 직후 안락사된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 수치는 현지 브리더들의 구두 증언을 옮긴 것으로, 체계적인 통계 조사 결과는 아닙니다.
반대로 말하면, 대다수의 파촌 나바로는 갈라짐이 중간 정도에 그치고 아무 문제 없이 숨 쉬고 젖을 먹고 뛰고 사냥합니다. 이 견종을 '태생적으로 병약한 개'로 단정하는 것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스플릿 노즈가 구개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실제 보호자가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는 이 글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습니다. 카탈부룬 편에서 관련 내용을 별도로 정리했습니다.
6. 파촌 나바로의 친척, 부르고스 포인터
▲ 부르고스 포인터(페르디게로 데 부르고스). 스페인 사냥개 사부에소 에스파뇰과 파촌 나바로의 교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견종이며, 코는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Photo by Camaxtli kennel, via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파촌 나바로를 이야기할 때 함께 등장하는 견종이 부르고스 포인터입니다. 스페인 사냥개 사부에소 에스파뇰과 파촌 나바로의 교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며, 두 견종은 '이베리아 포인팅 도그(Perros de Punta Ibéricos)'라는 이름으로 묶여 불리기도 합니다.
▲ 부르고스 포인터 암컷의 측면. 파촌 나바로와 마찬가지로 흰 바탕에 반점이 흩어진 피모가 흔하며, 스페인 포인터 계열 특유의 늘어진 귀와 묵직한 골격이 드러납니다.
Photo by Canarian, via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여기서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부르고스 포인터의 품종 표준과 견종 소개 자료에서는 갈라진 코가 이 견종의 특징으로 언급되지 않으며, 스플릿 노즈 개체가 보고된 자료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같은 계보를 공유한다고 알려진 두 견종 사이에서도 이 형질은 사실상 한쪽에만 남은 셈입니다. 이 형질이 계통 전체를 규정하는 특징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서 유지되고 선택된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확인되지 않은 가설: 인터넷에서는 "파촌 나바로가 모든 두 갈래 코 견종의 조상이며, 스페인 정복자를 통해 남미로, 무역로를 통해 터키로 유전자가 퍼졌다"는 설명이 자주 보입니다. 남미 쪽 전파설은 2007년 탐험가 존 블래시포드-스넬이 BBC 인터뷰에서 제기한 추정이고, 터키 카탈부룬으로의 전파를 뒷받침하는 문헌이나 유전자 비교 연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또한 갈라진 코는 이 세 견종만의 특징이 아니어서, 과거 문헌에는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조렵견, 아일랜드 레드 세터 계통에서도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 견종이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7. 지금의 파촌 나바로, 그리고 한국에서의 현실
2009년 조사에서 전체 개체 수는 700~1,000마리로 추정되었습니다. 체고는 48~60cm, 수컷 평균 55cm에 암컷 평균 52cm이며 체중은 20~30kg입니다. 피모는 대체로 단모이고, 흰 바탕에 검정·밤색·간색·주황색 반점이 섞인 조합이 가장 흔합니다.
국내 분양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파촌 나바로는 FCI 미공인 견종이고 국내에 등록된 브리더가 없으며, 한국으로 반입한 사례나 실제 비용에 관해 확인 가능한 공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구체적인 분양가와 수입 총비용 수치들은 출처를 추적할 수 없어 이 글에서는 싣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스페인 현지에서도 취약 품종으로 관리되는 개를 국내에서 손쉽게 분양한다고 광고하는 곳이 있다면, 그 개가 정말 파촌 나바로인지부터 의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흰 바탕에 반점이 있는 포인터 계열 개는 흔하고, 코가 조금 깊게 파인 개체도 여러 견종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무리 —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찾는 일
파촌 나바로의 이야기에는 왕실의 비단 방석도, 극적인 전쟁의 비극도 없습니다. 토끼가 병으로 사라지자 사냥꾼들이 다른 개를 택했고, 그렇게 조용히 잊혔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개를 되찾은 것은 어느 위대한 결단이 아니라, 짧은 보고서 하나 쓰라는 과제를 받고 시골 마을을 돌기 시작한 학생 세 명의 수십 년이었습니다.
이 견종은 지금도 취약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갈라진 코는 특별한 능력을 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개가 남아 있는 이유는 초자연적인 무엇이 아니라, 기록하고 세어 보고 이름을 붙여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파촌 나바로가 모든 두 갈래 코 견종의 조상인가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서 남미나 터키로 이 형질이 전파되었다는 주장은 정황에 기반한 추정이며, 이를 입증하는 유전자 비교 연구는 공개된 바 없습니다. 갈라진 코는 다른 여러 지역의 조렵견에서도 나타난 기록이 있습니다.
Q2. 갈라진 코가 후각에 도움이 되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브리더들 사이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스플릿 노즈는 일반적인 코에 비해 후각상의 이점이 없는 외형적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Q3. 파촌 나바로는 정말 멸종했었나요?
1970년대 초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종했다고 믿었지만, 어느 기관이 공식적으로 멸종을 선언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1979년 조사에서 생존 개체가 확인되어 복원이 시작되었습니다.
Q4. 파촌 나바로는 모두 코가 갈라져 있나요?
아닙니다. 일부 개체에서만 나타나며, 모든 브리더가 이 형질을 선택해 교배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파촌 나바로의 품종 표준은 갈라진 코를 결격 사유로 두지 않는 사실상 유일한 표준입니다.
Q5. 한국에서 분양받을 수 있나요?
확인 가능한 국내 분양 사례나 비용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FCI 미공인 견종이고 스페인에서도 취약 품종으로 관리되고 있어, 국내에서 손쉬운 분양을 광고하는 곳이 있다면 신중하게 접근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참고 문헌 및 출처
- Craig Koshyk (2011), 'Breed of the Week: The Pachón Navarro', Pointing Dog Blog — 카를로스 콘테라 인터뷰 및 복원 과정 기록 pointingdogblog.blogspot.com
- Fernández Rodríguez, M. 외 (2009), Guía de campo de las razas autóctonas españolas, 스페인 환경농림해양부 — 품종사·개체 수 추정
- 나바라 지방정부 (2006), Orden Foral 270/2006 — 파촌 나바로 품종 표준 Boletín Oficial de Navarra
- Real Sociedad Canina de España, 'Pachón Navarro' 품종 표준 No. 409 (FCI 미공인) rsce.es
- BBC News (2007), 'Double-nosed dog not to be sniffed at' — 스플릿 노즈의 남미 전파 가설 news.bbc.co.uk
[스플릿 노즈 3부작 시리즈]
- 카탈부룬(Catalburun) | 코가 갈라진 개와 구순구개열 연구, 그리고 현실적인 양육 이야기
- 안디안 타이거 하운드 | 1913년 포셋의 기록과 2005년 볼리비아에서 다시 나타난 두 갈래 코 사냥개
본 글은 교육 및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작성자는 수의사·생물학자가 아닙니다. 반려동물의 건강 문제는 반드시 수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의료 정보 안내와 편집 정책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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